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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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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218.♡.192.227) 작성일17-04-15 16:19 조회1,92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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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삼재를 떠난지 12시간, 앙상한 나뭇잎 사이로 보이는 장터목 산장,

 

“휴”

 

나도 모르게 흘러나온 한숨의 의미는, 80%의 여정이 끝났음을 안도하는 것이리라,

 

어둡기 전에 하산하려면 빨리 이른 저녁을 먹어야 한다.

사람들이 붐비는 곳을 피해 한적한 곳에 자리를 잡고 앉아 급하게 빼든 김밥 한줄,

한입 가득 베어먹는데... 부추가 끊기지 않고 딸려나온다.

부추를 한꺼번에 먹어버리면 나머지 김밥은 부추가 없는 김밥이므로,

어떻게 해서든지 끊어보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그런데,갑자기,어디선가,

 

“깔깔깔”

 

산에 다니다보면 그다지 우습지도 않은말에도 간드러지게 웃곤하는 여자들을 간혹 볼때가 있는데, 딱 그웃음 소리이다.

 

‘주변에 아무도 없는줄 알았는데...’

 

웃음이 나는곳을 쳐다보니 3-4명의 남녀가 둘러앉아 늦은 점심을 먹고 있었는데 그중 한여자가 나와 눈이 마주쳤다.

 

앞이빨로 부추를 자르려는 모습을 처음부터 보고 있었는지 몰라도 그게 사람을 놀래킬 정도로 우스운 일인가?

 

머쓱해서 얼굴을 돌리고 부추를 한번에 쑥 잡아빼 한꺼번에 먹어버렸다.

 

웃은게 미안했는지는 몰라도 그여자분은 “막걸리 하실줄 알면 한잔 하시라”고 권했지만 정중히 사양하였다.

 

김밥 두줄을 다먹고 가려고 하였는데 또한줄을 빼먹자니 민망하기도 하여 다른곳으로 자리를 옮겨 먹고는 하산하였다.

 

김밥

 

어릴적 소풍길의 기억 대부분은 즐거움이지만 그한켠에는 식욕과 부끄러움 사이에 갈등하였던 기억이 섞이어 있다.

 

소풍길 나의 도시락 안에는 썰지않은채 누워있는 세덩어리 김밥이 있었다.

 

당시만 해도 소풍날이 아니면 좀처럼 대하기 힘든 음식이 김밥이었다.

점심시간이 되기전에 서너번 열어보고 점심시간이 되면 “이게 웬떡이냐”며 달게 뜯어 먹었다.

다른 친구들의 찬합안에 꽃이 핀 듯 울긋불긋한 김밥이 눈에 들어올 무렵부터는 부끄러움과 식욕이 갈등을 일으켰다.

 

찬합에 담겨 꽃이 핀 듯 울긋불긋한 김밥들앞에 덴뿌라,단무지,시금치가 전부인 썰지않은 김밥을 펼쳐놓을 용기가 없었다.

 

둥그렇게 앉아 펴놓고 먹는 친구들과 조금 떨어진 곳에 자리를 잡고 혼자 김밥을 베어먹었다.

 

나의 인생을 가로지르던 슬픔의 길이가 유난히 길었던 유년시절, 그때 나는 꽤 고독했던 것 같다.

 

흐르는 세월에 고독의 그림자는 엷어졌지만 김밥을 떠올리면 친구들과 뚝 떨어져 김밥을 먹던 그곳이 생각이 난다.

 

요즘은 흔한 음식이 김밥이요, 먹기에 아까우리만치 색이 곱고 종류도 다양하다.

 

어린시절에는 썰지않은 김밥을 싸준 어머니를 원망도 하였지만, 그이유를 알게된 어느날부터,

 

아무리 색이 고와도 나는 썰지않은 김밥만을 먹는다.

 

어머니가 아들에게 보이기 미안해 눕혀 싸준 김밥... 아직까지 그김밥만큼 맛있는 김밥은 먹어본적이 없다.

 

두딸내미는 김밥을 뜯어먹는 나를 보고 기겁을 하는데,

 

어쩌랴, 철이 들려면 아직 멀었는데....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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