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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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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218.♡.192.227) 작성일17-04-15 16:16 조회1,911회 댓글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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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서기

 

곧장 뻗은 안양천 주로가 연한 살결처럼 보드랍게 보인다.

 

고통스런 길로만 기억되던 안양천 주로가 보드랍게 보인다니... 대체 무슨 까닭일까?

 

굳이 그이유를 고백하자면,

 

급한 사정으로 불참한 황석권 부장님 대타로 출전한 혹서기 마라톤때문이다.

 

주최측에서 제공하는 휼륭한 간식거리와, 국립공원 능가하는 깨끗한 화장실,

 

무엇보다 무성한 숲에서 뿜어져 나오는 피톤치드를 싱싱하게 호흡할수 있는 혹서기 대회는 휼륭하였다.

 

종교적 자세까지 요구하는 언덕길 5회를 왕복하는 코스만 아니었다면 나의 평가가 후한 것은 결코 아니었을 것이리라.

 

다섯 번이나 같은 언덕길을 왔다갔다 하는 혹서기 마라톤은 각 반환점마다 생각이 수시로 바뀌는 이상한 대회였다.

 

두번째 반환점부터는 고통과 지루함이 몰려오기 시작하여 그만 뛸까 라는 생각이 얼핏 들었다.

 

하지만, 아이언맨인 황석권 전부장님 배번을 달고 포기하기란 결코 쉬운일이 아니었다.

 

고통의 무게를 알고있는 황부장님이야 포기한 나를 질책하지 않으리라 믿지만, 황씨 가문에서는 가만히 있지않으리라는 생각이 들자 세 번째 반환점으로 향할 수밖에 없었다.

 

세 번째 반환점에서는 스스로 생각하고 또 생각해 보아도 이 언덕길을 왜 뛰어야 하는지 이유를 생각해낼수가 없었다.

 

풀코스를 뛰는 제각각의 이유가 많겠지만 고통후에 맛보는 성취감 또한  그이유중에 하나일터인데, 나는 이미 그고통은 받아들이려 하지 않고 성취감만을 바라고 있으니 모순도 이런 모순이 없다.

 

네 번째 반환점을 돌면서는 도데체 이런 코스를 만들어 놓은 사람이 누구지 라는 생각이 들며 그사람의 얼굴이 궁금하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한가지 분명한 것은 취미가 사람 괴롭히는 것이고, 개인적으로 몹시 미워하는 종류의 인간임은 틀림이 없을것이라 짐작하였다.

 

하지만 어찌할 것 인가?

 

뛰는것도, 포기하는것도 내 자신이 결정할수 있는 문제인데, 죽을만치 지루하고 힘든 코스를 만든 사람을 원망하고 있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다섯 번째 반환점을 돌 무렵 맹렬하게 주로를 때리는 빗줄기는 마치 총알이 퍼붓는 것 같았다.

 

양쪽 허벅지가 쓸려 바지를 부여잡고 뛰었지만 이제는 끝났구나 하는 생각에 세차게 내리는 빗속을 힘차게 뚫고 전진하였다.

 

반대편 주로 여기저기를 살필만큼 마음의 여유도 생기어 광명마라톤 14인의 전사를 찾았지만 절반밖에 모습을 볼 수 없는 통탄할 사태가 벌어졌다.

 

전부 완주한다는 말을 철석같이 믿고 살점을 도려내는 아픔을 참으며 여기까지 왔는데...

 

...........

 

5시간 12분....

 

기록시계에 내 기록을 확인하는 순간, 절대로 변하지 않을 생각 하나가 뚜렷이 떠올랐다.

 

‘내가 혹서기 대회에 출전하면 성을 간다’

 

먼저 들어온 일행들이 수고했다고 위로하고 회장님과 서성원님이 권하는 막걸리 한잔이 속을 후끈하게 달구어 그동안의 피로가 조금은 위안을 받는 듯 하자 언뜻 이런 생각이 들었다.

 

‘오늘처럼 나와 많은 대화를 나눈적이 있었는가?.. 극한의 과정에서 나를 만남으로서 한층 성숙해지는 기회는 되지않았을까?’

 

기록시계를 확인하고 막걸리 한잔을 마시는 시간의 차이가 고작 1분도 되지않았는데 변치않을 것 같았던 생각이 벌써 또다른 팔색조의 꼬리를 물었다.

 

 

댓글목록

최고관리자님의 댓글

최고관리자 아이피 218.♡.192.227 작성일

이광성  혹서기 대회에서 완주하셨다 하면 일단은 대단한 것 인데요. 진광근님 평소 정모에는 자주 안 나오신 것 같은데, 완주하려 육체적 고통을 넘느라고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군요. 수고 많았습니다. 지는 참가하면 고생길이 훤할 것 같아 아예 접었구만요..ㅎㅎ   
[ 2011-08-16 21:54:37 ]
 
 

조우곤  항상 좋은글로 후기 작성하여 주시는 진광근 선배님께 감사하다는 전합니다. 몸 회복 잘 하시고 정모때 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2011-08-16 22:02:14 ]
 
 

김이섭  와우, 대단하십니다. 토요일 36홀 돌고 일요일 혹서기 완주라, 왕 체력이시네요. 다음은 서브-3목표로^^  회복 잘 하시고 정모때 뷥겠습니다.   
[ 2011-08-17 11:31:20 ]
 
 

이용찬  그랳군요~~기다리기 싫어 다섯번째 포기를 권유해도 ...그기록은 황부장에게 더치명적인데 ㅎㅎ~~ 자신과의 타협에서 승리하신걸 축하드립니다!!   
[ 2011-08-17 11:52:27 ]
 
 

김학도  고생많이 하셨군요.진광근님!힘든추억이 더 오래 기억되겠지요.   
[ 2011-08-17 12:40:51 ]
 
 

이상필  완주를 축하드립니다.   
[ 2011-08-18 09:04:04 ]
 
 

황석권  5시간 12분 어려움의 실감이 밀려오네요~~ 과천에서 혼나셨네요 !!! 축하합니다.   
[ 2011-08-18 18:22:31 ]
 
 

임원호  혹서기 완주했다는 자체가 대단한것입니다.내공이 만만치 않으십니다. 수고하셨습니다.   
[ 2011-08-21 09:43:30 ]